2023년 9월 19일 나는 키프러스의 라르나카에 도착했다. 라르나카는 키프러스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큰 도시 중 하나로,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석관을 뜻한다. 이 지역에서 수많은 무덤과 관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키프러스(사이프러스)라는 이름의 어원도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사이프러스 나무라는 설이 있고, 구리와 청동이 많이 발견되어 그 뜻이라는 설도 있다. 모든 것에 이름이 지어지는 연유를 찾아보면 자연스러운 토착민의 명명일때도 있지만, 지배자로부터 낙인찍히는 경우도 많다. 그리스어, 라틴어, 터키어, 영어가 섞여 이 섬을 이루고 있다. 어떤 이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조차 모른다.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종종 식민주의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름은 어쩌면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터키와 더 가깝고, 유럽 연합에 가입한 나라지만 중동에 더 가까운 지리적 요소는 키프러스라는 섬을 더욱 고립시키는 것일까, 축적된 역사에 도전하게 하는 것일까. 이 섬과 외부를 잇는 모든 것들, 이를 테면, 바다, 배, 비행기, 무선 기술, 해양 케이블 속에서, 특히 테크놀로지의 수많은 신화를 찾는 짧은 1주일의 레지던시가 시작되었다. 레지던시는 키프러스 기술 대학(Cyprus University of Technology) 하의 MADLab(Media Arts & Design Research Lab)에서 진행되었으며, 대학은 키프러스 제 2의 도시이자 휴양지인 리마솔에 위치하고 있다.
9월 19일부터 9월 28일까지 짧게 체류하는 동안 날씨는 더웠다. 섬의 정가운데 위치한 트로도스 (Troodos) 산맥 근처는 시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름도 익숙한 올림푸스 산이(그리스의 그것, 화성의 그것은 아니다) 자리하고 있다. 이 산 위에는 RAF(Royal Air Force)로 알려진 영국의 로얄 에어포스 공군이 위치하고 있다. 1800년대 영국군의 기지로 영국이 이집트를 식민지배할 때 사용했으며, 시원한 기후덕에 영국군이 여름에 피서를 오는 기지라고 한다. 현재는 라디오 간청소 역할을 하며, 특히 중동의 라디오 송신기 통신을 감시하는 통신 정찰에 이용되고 있다고 암암리에 알려져 있다.
산으로 내려와 다시 리마솔의 해변. 그 바로 옆 바다에는 또다른 RAF 기지가 있다. RAF Akrotiri (곶)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이 이름은 1950년대부터 존재한 이름이다. 1956년의 수에즈 위기를 시작으로 이 기지의 이름이 알려졌으며, 당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분쟁을 생각하면, 현재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키프러스에서 바다만 건너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가 있고, 팔레스타인의 가자, 이스라엘의 하이파, 텔아비브가 있다. 직선거리로 200km에서 270km 남짓이다.
키프러스의 아름다운 해변은 그 분쟁의 땅을 바라보고 있다. 식민의 식민을 거듭한, 식민을 다시 식민하기 위한 땅의 전쟁이 바로 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배를 타고 중동으로 갈 수 없을지 궁금했다. 키프러스는 영국과 그리스 사람들의 휴양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중동보다 멀지만 영국과 그리스에서 키프러스까지는 종종 크루즈가 다닌다. 며칠 동안 바다에 떠서 그 여유로운 시간과 풍경을 즐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남키프러스는 대략 1,000km의 직선 거리가 있다. 물론 항로는 직선 거리가 아니기에 더 오래 걸릴 것이고, 영국에서 키프러스는 그 수배는 걸릴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저 멀리서 바라보며 (보이진 않지만) 리마솔의 해변에서 배를 찾았다. 리마솔에는 수많은 유럽 부호들의 요트가 정박되어 있다. 그러나 구글맵에 기록된 유일한 항로는 리마솔에서 이스라엘 아스돗(Ashdod)밖에 없다. 물론 이 또한 어떤 크루즈 회사의 항로이기에, 이동에 목적이 있지는 않다. 이 도시의 이름은 “견고한 요새, 성채”라고 한다.
키프로스의 사람들은 대부분 비행기로 바깥까지 이동한다. 배를 타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배가 다닌다고 한다면, 그것은 주로 터키의 실효 지배를 받고 있는 북 키프러스에서 터키로 넘어가는 페리가 있을 뿐이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역사와 지리를 가진 나라에서도 식민지배의 방점들은 쉬이 눈에 띄었다. 섬 안에 국경이 있고, 주변국이 바다로 연결되어 있지만 바다를 건널 수 없는 점, 저 멀리 유럽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영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터키 군인과 유럽 연합 군인이 총을 들고 있는 곳. 수많은 유람선만이 중동과 이곳을 연결하고, 유럽인의 보트가 정박되어 있는 곳. 그러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만 하는 것이다.
방문 기간 동안에 리마솔의 NeMe art space에서 Sea Blindness라는 전시(기획: Régine Debatty, Carmen Salas)가 있었다. 바다를 정치, 생태, 경제적 관점으로 보는 전시로, 중동과 유럽 사이의 난민, 환경, 이동 등 여러 마찰을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는 전시였다. 여러 작품 중에서도 특히 Jafra Abu Zoulouf 작가(팔레스타인 출신, 리마솔 거주)는 이스라엘에서 리마솔로 크루즈를 타고 넘어오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풍경을 엮는 작품을 선보였다. 물론 이 시점은 현재의 가자 지구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한 달 전 이었지만, 일상적인 리마솔의 감상을 열거하는 이스라엘인의 인터뷰 내용과 리마솔의 저편 도시인 하이파의 풍경이 교차되는 감각 자체가 현시대의 식민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유럽 식민지배의 역사와 중동의 분쟁을 연구하러 온 것은 아니다. 나의 주제는 베를린에 이어 (이 시점에서 나는 5개월동안 펠로우쉽을 하며 베를린에 체류하고 있었다), 인공지능 식민주의였다. 나의 주제는 식민주의가 점점 블러링되는 것, 그 블러링에 인공지능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였다. 역사는 반복이고, 식민주의는 사라지지 않지만, 어째서 인공지능에 의한 식민주의적 뒤틀림은 더욱 흐릿해지며 눈가리기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인가를 주제로 삼고 있던 나에게 키프러스의 역사, 위치, 국경은 어딘가 개안의 효과가 있었다. 한국 또한 국경이 막힌 섬 같은 도시이기에 이 감각은 어딘가 날카로웠지만, 북키프러스의 국경을 넘는 것은 또다른 종류의 감지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떤 독재자나 황제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자신이 자본에 식민화 되는 것, 그것을 촉발하는 데이터 식민주의와 인공지능 식민주의에는 국경이 없다.
아마도 이러한 국경없는 인공지능 식민주의를 연구하며 예술적 언어로 풀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작가 중 하나가 Alexia Achilleos일 것이다. 알렉시아는 내가 큐레이터로 공동기획하고 있는 Forking Room의 지난 초청 작가였으며, GAN이미지 기술로 키프러스의 식민지적 풍경을 그린 Colonial Landscapes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현재는 MADLab에서 연구를 하고 있어 공통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이번 기회에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괄목할 만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AI Colonialism Board Game (Cyprus) 이다. 알렉시아 작가가 개발한 이 게임은 서구 중심적 인공지능 연구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 차이와 지역의 사회정치적 특성을 고려한 비판적 사고를 제기하고, 특히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버전은 키프로스 버전으로, 키프로스의 현재 상황에 빗대어 인공지능의 사회적 영향과 권력 역학 관계를 바라보고 비학문적으로 흥미롭게 접근하여 인식을 높이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특히 유럽 제국주의 판타지 보드게임을 참고하여 키프로스의 식민지적 이미지를 인공지능으로 생성하는 것을 통해 프롬프트 기반의 인공지능을 도구화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게임은 키프로스가 인공지능 식민주의적 통제하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전제가 아닐지도 모른다)한다. “플레이어”는 이에 맞서 싸우는 역할이며 섬 전체 지도에 산재해 있는 “탈식민주의적 조각”을 모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다. 게임에는 “웹 스크래퍼” 역할이 존재해 플레이어들을 방해한다. 중간중간에 “플레이어 카드”가 있어 각 카드에는 인공지능 식민주의가 어떻게 키프로스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도록 되어있다. 역할은 팀 안에서 자유롭게 나눌 수 있으며, 오늘 가장 비관적인 사람이 웹 스크래퍼 역할을 맡는 등 적재적소에 유머가 섞여 있기도 하다. 플레이어와 웹 스크래퍼는 각각 탈식민주의적 조각을 모으면서 “탈식민주의적 예측 카드”도 획득하게 된다. 이렇게 플레이어와 웹 스크래퍼는 저마다의 여행을 떠나다가 어느 순간 만난다. 이 때 “개인정보 보호규정” 카드를 뽑아 개인정보 보호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해야 하는데, 이 민원이 해결되기 전까지 게임은 진행되지 않는다. 만약 이때 이미 플레이어가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민원 해결 결과에 따라 빼앗길 수도 있다. 무사히 플레이어가 집으로 돌아온다면 조각과 함께 받았던 카드를 읽으며 키프로스에 닥칠 미래를 예측하고 다이어그램을 그리며 승리를 기록한다. 만약 웹 스크래퍼가 모든 조각을 먼저 모아 집으로 돌아왔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 카드를 돌아보며 암울한 미래와 해결 방법을 토론해 보며 게임은 마무리된다.
이 게임 전체의 구조는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는 범용성을 띄고 있지만, 카드와 조각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키프로스만의 여러 지정학적 요소가 담겨있다. 예를 들어 키프로스의 인구 구조가 인종적으로는 그리스인, 터키인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종교적으로는 아르메니아, 마론파 등 여러 종파가 있다는 점, 그리고 라틴과 로마에 대해서 키프로스 헌법에 대해서 어떻게 규정하는지 등 복잡한 사회구조를 알아야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인구총조사에 따른 연령 그룹, 이민자, 젠더, 종교, 언어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사전에 나열하고 있어, 예를 들어 “공동체에 인공지능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토의를 할 때도 세심하게 그 공동체를 나눠서 토론해야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이에 국제적인 그룹의 데이터 착취주의와 더불어 키프로스 안팍으로 가해지는 권력과 위계구조에 대해 파악해 가는 것이 이 게임의 목적이다.
나는 알렉시아가 이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예전부터 들었기에, 종종 이것의 한국 버전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신기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한국의 IT, 엔터테인먼트 산업, 국가주의적 컴플렉스, 자본을 삶의 가치 최우선에 놓는 한국 사회, 젠더와 장애, 지역간의 불평등과 같이 웹 스크래퍼가 기뻐할만한 여러 허들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버전을 함께 만들어 보는 것을 상상한다. 물론 가장 비관적인 사람이 “웹 스크래퍼”가 되야하니 그것은 내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인공지능 식민주의는 이전의 식민주의를 반복한다는 면에서 동일하지만, 점점 그 명확한 형태가 불분명해진다. 식민지배자가 어느 물리적인 땅에 깃발을 꼽는 형태가 아닌, 우리 모두가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공급하고 그 서비스를 “누린다”고 생각하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 어떤 사이클도 거부할 수 없는 사회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블러링의 기술에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A와 B사이의 간극을 격차없이 없애는 방법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더 큰 간극을 만들어 위계를 정립하는 방법, A와 B는 하나다라고 강력하게 선언하는 방법, A와 B는 애초에 원래 하나였다고 눈가리기 하는 방법 등 전략은 다양하다. 나는 지난 프로젝트 <탈현지화 신드롬>에서 세계화/국제화의 맥락과 현지화/지역화의 맥락이 모두 자본으로부터 시작해 다른 전략을 취했지만, 결국 하나의 자본 지배 구조를 구축했다는 전제를 심화했다. 로컬에 깊이 들어가는 것은 결국 세계에 먹이를 주기 위함이고, 그 경계는 프랜차이즈화되어 어디까지인지 전혀 알 수 없다. 한국에서 생산해서 미국에서 팔기, 미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한국에서 사용하기, 와 같은 이항적인 자본주의는 신기술 분야에서는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 한 국가에서 개발된 상품이나 기술은 여러 나라를 통해 여러 현지화를 통해 걸러지고 또 걸러져 하나의 지배 모델을 만들고 그것은 여러 겹이 겹치고 겹쳐 “세계적이다”라고 하는 개념을 생산해낸다. 그것이 “세계화”의 블러링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데이터 생산자로서 노동을 제공하고, 인공지능의 블러링을 강화시킨다.
프랜차이즈화를 넘어 프랜차이즈의 콘크리트화에 도달한 지금,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예술가들은 이 블러링의 겹을 파고 들고 화석이 되기전에 지층을 기록해 둔다. 최근 학계는 인류세를 공식으로 도입하는 것을 중지했다. 이후 인공세와 같은 개념이 주창될지도 모르니 제일 먼저 우리는 이 층의 아래부터, “플레이어”가 되어 “조각”을 모아야 할 것 같다.